남해 쏠비치에서 바라보는 소치도(애기섬)의 아픈 역사
소치도에 숨겨진 한국전쟁의 비극
남해의 아름다운 쏠비치 리조트에서 바라볼 수 있는 소치도(애기섬)는 평화로운 모습 뒤에 한국전쟁 당시 겪은 비극적인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소치도의 숨겨진 전쟁 이야기와 현지 방문 시 알아두어야 할 깊이 있는 정보를 전합니다.
목차

소치도 전경
1. 소치도의 역사적 배경과 이름의 유래
소치도는 옛 이름 '애기섬'으로 불리며, 어린 아이를 닮았다는 섬 모양에서 유래했습니다. 조선시대부터 해상 교통의 요충지로 역할을 했으며, 수많은 어민들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2. 한국전쟁 당시 소치도의 비극
1949년 6월 5일부터 이승만 정부는 전국적으로 좌익 성향의 사람들을 ‘국민보도연맹’에 가입시켰습니다. 여수의 ‘보도연맹’원들은 대부분 여순사건 관련자들이었습니다. 보도연맹은 좌익 활동을 하다가 전향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만든 조직으로, 정식 명칭은 국민보도연맹이었으나 통상 ‘보도연맹’으로 불렸습니다. 1949년 말까지 가입자는 전국적으로 30만 명에 달하였습니다. 결성 목적은 좌익 세력을 통제·회유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활동 목표는 대한민국 정부의 절대 지지, 북한 괴뢰 정권 절대 반대와 타도, 공산주의 사상 배격·분쇄 등의 강령으로 요약됩니다. 강령에 따라 보도연맹원들은 전향의 진실성을 입증하기 위해 좌익 분자들을 색출하여 밀고하고 자수를 권유하는 등 반공 활동을 수행하였습니다. 1950년 6·25 한국전쟁이 발발한 초기, 서울을 제외한 전국, 특히 이천·안성·평택 이남 지역에서는 정부·경찰이 후퇴하는 과정에서 이들 보도연맹원에 대한 무차별 검속 및 집단 총살이 자행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북한 인민군 점령 지역에서도 좌익 세력에 의한 보복 학살이 발생하는 주된 원인이 되었습니다. 여수의 경우에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여수를 비롯한 시외곽 지역인 율촌·소라·삼일·쌍봉에 있는 보도연맹원들을 여수경찰서 무덕관에 집결시킨 후 경남 남해도 남단의 애기섬으로 끌고 가 총살한 뒤 수장하였습니다. 남면·화정면·삼산면의 섬 지역에서도 주변 무인도나 바다에서 처형 후 수장하였습니다. 당시 특무대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애기섬 희생자는 약 120명 이내로 추정됩니다. 이로 인한 아픈 상처가 섬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3. 쏠비치에서 바라본 소치도의 현재 모습
현재 소치도는 평화로운 자연경관을 자랑하며, 쏠비치 리조트에서 바라볼 수 있는 아름다운 경치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여러 추모비와 역사 안내판을 통해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며 평화를 기원합니다.
4. 소치도 탐방 시 유의사항과 방문 팁
- 하선금지 기간이 있어 남해군에 확인!
- 정기노선은 없고 낚시어선을 이용
- 조용하고 예의를 갖춘 태도로 방문해 주세요.
- 파도나 해변 상태를 사전에 확인해 안전한 탐방을 계획하세요.
-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 모두를 존중하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5. 지역민과 관광객의 기억과 평가
소치도에 대한 아픈 기억은 지역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깊은 감명을 남깁니다. 평화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매년 추모행사가 열리며, 많은 이들이 방문해 역사 교육과 평화의 메시지를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6.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소치도는 어떻게 방문할 수 있나요?
남해 쏠비치 리조트 인근 송정에서 선박을 통해 접근 가능합니다.
Q2. 소치도 주변에 숙박 시설이 있나요?
쏠비치 리조트를 비롯해 남해 지역 다양한 숙박 옵션이 있습니다.
Q3. 한국전쟁 관련 유적지가 남아 있나요?
섬 내에는 몇 몇 기념비와 설명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Q4. 탐방 시 꼭 지켜야 할 사항은 무엇인가요?
자연 훼손 방지와 예의 바른 행동, 안전 수칙 준수가 가장 중요합니다. 하선금지 기간이 있어 남해군에 확인!
- 소치도는 한국전쟁이라는 아픈 역사를 간직한 남해의 작은 섬입니다.
- 쏠비치에서 볼 수 있는 평화로운 자연과 과거의 기억이 공존하는 특별한 장소입니다.
- 역사적 의미를 존중하며 방문 시 안전과 예의를 꼭 지켜야 합니다.